<제7회 인제대학교 독서감상발표회 최우수상 수상 후기>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즉 네 선택이나 노력이 헛수고로 끝나도록 운명 지어져 있다 하더라도, 그래도 너는 조금 도 어김없는 너인 거고, 너 이외의 아무것도 아닌 거야. 너는 너로서 틀림없이 앞으로 전진하고 있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무라카미 하루키 <해변의 카프카> 中에서
대학 입학과 동시에 내 가슴속 깊은 곳에 아로 새겼던 글귀이다. 늘 소극적이고 겁 많던 나에게 큰 힘을 실어주는 든든한 글귀이다. 용기를 잃고 뒷걸음질 치려할 때 앞으로 나아가라고 격려해주는 고마운 글귀이다. 나는 나로서 틀림없이 앞으로 전진하고 있다고 말이다.
학교생활의 1/3을 도서관에서 보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도서관은 나와 아주 가까운 사이다. 9월의 어느 날인가부터 “제7회 독서감상문대회”를 알리는 포스터가 내 눈에 유난히 많이 띄었다. 이상하리만치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포스터가 보이는 것이 아닌가? 어쩌면 이것이 최우수당선의 운명을 넌지시 말해주는 복선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예전과 다르게 올해부터는 테마가 미리 정해져 나왔다. 이번 테마는 다름 아닌 람사르 총회가 창원에서 개최되면서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는 “환경”에 대한 것이었다. 이렇다 할 글재주도, 저렇다 할 높은 사 고력도 없는 내가 도전하기에는 아주 심오한 주제였다. 하지만 늘 그렇듯 ‘든든하고도 고마운 글귀’가 가능성이라는 세 글자 나의 손에 살며시 쥐어주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험기간도 순식간에 지나가고 달콤한 휴식을 즐길 틈도 없이 과제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과제들 더미에서 정신없이 허덕이고 있을 때, 독서감상문 당선의 기대를 품고 오래전에 대여해 두었던 <꿈의 도시 꾸리찌바>는 나의 책상 한 켠에서 조용히 묵혀지고 있었다. 생각하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몰아치는 환경 속에서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이때서야 나는 정신을 차분히 가다듬었고 일의 우선순위를 다시금 재정돈하면서 잊고 있었던 책을 손에 잡았다.
어릴 적 나는 아버지의 사업차로 김해의 시골마을에서 살았다. 깨끗하고 맑은 토양, 공기, 물을 맘껏 누리며 무한한 자연의 품에서 자라났다. 그래서인지 도시는 나에게 지금도 낯설기만 한 곳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30종의 다양한 환경관련 도서 중 인문학도에게는 난해하기 그지없는 건축도서를 선택한 유일한 이유가 될 것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도시를 향한 간절한 소망도 더디게 넘어가는 페이지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이러다간 감상문 제출기한을 훨씬 넘기고도 다 읽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내린 특단의 조치는 도서관에 비치된 시각/영상자료를 활용하는 것이었다. 영상자료를 보며 책을 읽으니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들이 사르륵 풀리기 시작했고 책 페이지가 거짓말같이 술술 넘어갔다.
이번 책을 읽으면서 영상의 도움을 많이 받았던 터라 발표대회 준비도 영상을 활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핵심적인 내용을 기억에 남도록 전달하고 싶은 욕심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인 것 같았다. 내손으로 직접 영상을 만든다는 부푼 기대감으로 동영상 편집이라는 서툰 발걸음을 떼자마자 나는 큰 산을 만났다.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자신감은 사라져갔고 괜한 욕심이 아니었나하는 오만가지의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뒤엉켰다. 하지만 나는 끝내 포기하지 않았다. 10시간의 고투 끝에 동영상은 완성되었고 너무 뿌듯한 나머지 몇 번을 반복해서 보고 또 보았다.
발표전날 밤까지 동영상과 씨름한 탓에 발표준비를 전혀 못하고 수많은 사람들 앞에 서야했다. 순간 머릿속이 새하애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특수교육과라 하면 발표실력은 당연히 좋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것은 큰 오산이다. 어릴 적부터 대중 앞에만 서면 찾아오는 울렁증이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혔기 때문이다. 발표처음부터 나의 실수는 시작되었고 주어진 시간 10분을 기어이 넘기고 말았다. 시간을 쪼개 응원하러 와준 친구들을 볼 면목이 없었다. “수고했다. 잘했다.”는 친구들의 위로를 들으며 나는 이어지는 발표들을 경청했다.
환경에 대한 책으로 저마다 다양한 의견들을 제시하는 이들의 눈은 모두 반짝이고 있었다. 책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글로 풀어낸 뒤 거기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대중 앞에서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과정까지, 이 모두를 보는 쉽지 않은 경주를 함께 달린 그들에게 나는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부족한 것 투성이었던 내가 쟁쟁한 후보들 가운데 최우수작의 영광을 누렸다는 것이 나는 사실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 아마도 심사위원들께서 나의 실수를 예쁘게 보아 넘겨주신 모양이다.
젊은이란 그런 거다. 젊음은 몸이 얼마나 버텨낼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의 한계를 설정한다. 하지만 몸은 언제나 잘 버텨낸다. 앞으로도 지치지 않는 도전을 통해 내ㆍ외적으로 나를 성숙시키는 노력을 쉬지 않고 할 것이다. 독서감상문대회, 책과 함께 했기만 가슴 뛰고 생기 넘치는 도전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뒤에서 끊임없이 응원해준 많은 이들에게 다시 한 번 고마움을 전하며 당선 후기를 줄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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