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벌거벗은 검은 사람들이 손엔 창을 들고 나를 꿸 것 같은, 자다가 깨면 텐트 너머에 야수의 번쩍이는 눈빛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의 대륙. "
아프리카에 가고 싶다고 생각한 건 순전히 축구 때문이었다. 2010년 월드컵이 남아공에서 열리기에 내가 차질 없는 진행을 챙겨야한다는 말도 안 되는 오지랖으로 나의 아프리카 원정은 시작되었다. 노상강도 때문에 백주 대낮이라도 동양인 꼬마 혼자 나다녀서는 안된다는 요하네스버그에서는 그저 여행 계획을 짜는 것이 전부. 예방주사도 거부한 쓸데없는 깡다구도 노상강도 칼자루 앞에서 온데 간데 없었다.
남아공 서부부터 향한 여행의 첫 시작은 크루거 국립공원. 길 잊어먹으면 죽는다며 설 레발치는 수다쟁이 흑인 가이드 넬슨의 입담에 텐트 속에 베낭을 묵묵히 정리한다. 곧 10인승 오픈카(?)를 타고 길을 나선다. 과연 어린 시절 에버랜드에서 해본 점잖은 사파리와는 차원이 다르다. 아래위로 연방 흔들어대는 차의 진동도 그러하거니와, 동물과 수다를 떠는 가이드 넬슨 또한 그렇다. 1살 먹은 어린 누우의 소리를 내어 잠자던 사자를 깨우고, 톰슨가젤의 경보발령 소리를 내어 얼룩말을 달리게 하는 걸 보면서 믿지 않을 수가 없다. 동물과의 수다라니. 행운이 차고 넘친 우리 조는 Big5라 불리는 사파리의 빅뱅-코끼리,사자,버팔로,표범,코뿔소-을 모두 만날 수 있었다. 보기 힘들다는 표범과 코뿔소를 만난 것도 황송했지만, 코끼리 50마리의 단체 물놀이 장면의 한 배경이 되어, 지축을 울리 던 그들의 발소리와 코로 내는 트럼펫 소리를 들었던 것은 황홀함 그 자체였다. 아프리카의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던 바꿀 수 없고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순간이었다. 밤이 되면 모닥불에 바비큐 파티를 했다. 넬슨이 해준 아프리카 음식 또한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아프리카의 생명력 속에 그네들의 음식을 먹으며 짤막한 아프리카어를 배우면서 아프리카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에 즐거웠다.
5일간의 사파리 여행을 마치고 남아공 내의 독립 소국 스와질란드로 향했다. 태어나 처음 듣는 나라인 스와질란드를, 태어나 처음 본 육로 국경으로 들어온 것도 신기했지만, 내 여권에 도장을 찍어주며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를 날리는 인상 좋은 국경 공무원 아저씨를 만났을 땐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엄.마.야.! 한국에서 일하셨던 적이 있다는 말에 그저 반가울 뿐. 스와질란드 민속촌에 가서 그들이 사는 움집을 구경하고, 마누라가 20명이라는 추장을 존경하며(혹은 부러워하며), 탄력 넘치는 전사들의 춤사위에 문득 야생을 느꼈다. 인간도 하나의 아름다운 동물이라는 듯. 옆에 있는 흑인 친구가 자기도 왕족이라는 말에 코웃음 쳤지만, 자기 형이 100명이라고 할 땐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그렇게 형이 많으니까 니가 내 옆에서 일을 해야만 하는구나. 노동하는 왕족이라니.”
함께 다른 지역으로 가자던 독일 친구의 유혹을 뿌리치고 온 더반은 남아공 제 3의 도시다. 예쁜 해변과 이슬람 문화의 향기를 가진 더반은 혼자 다니는 여행객에겐 위험한 도시라고 했다. 하지만 아프리카 여행을 하는 동안 충분히 위험한 사람이 된 나로서는 죽고싶냐며 붙잡는 숙소 사람들을 뿌리치는 말도 안 되는 용기가 생겼다. 나홀로 당당히 시내로 들어서서 맞이한 거리를 가득 매운 검은 사람들의 물결은 나를 유난히 하얀 사람으로 만들었고, 그 덕에 동물원 원숭이가 될 수 있었다. 알몸으로 거리를 나다녀 본 적이 있는가? 그 느낌, 난 이해할 수 있다. 온몸의 작은 털 하나까지도 훑어지는 그 느낌. 짜릿하기 그지없다.
이 후, 꿈결 같았던 남아공 남부의 가든 루트 여행 2주, 지금
은 신화처럼 느껴지는 보름간의 이집트 여행을 끝으로 한 달 반 동안의 아프리카 여행이 끝났다. 몇몇 도시에서 만난 불안했던 치안. 길거리에 붙은 낙태수술 할인 광고. 30%에 육박하는 스와질란드의 에이즈 보균율. 하지만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과 드넓은 초원에서 뛰놀던 동물들에게서 이 모든 불안과 어두움을 아무것도 아니게 만드는 아프리카의 생명력과 희망을 느낄 수 있었다. 검은 대륙 아프리카. 치명적으로 매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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