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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클럽 '부커스'

[감상문]1984

1984를 처음 접한 것은 1학년 2학기 전공수업에서였다. 교과서로도 사용되었고, 과제를 수행해야 했기 때문에 도서관에서 1990년대에 발간된 번역서를 빌려보았었다. 처음 읽었을 때에는 단순히 공산주의적 독재를 비판하고 풍자하는 내용인 줄로만 알았다. 조지오웰에 관한 리서치에서도 특이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독후감도 북한과 1984의 세계관을 비교하는 내용으로 작성하여 제출하고 발표하였었다. 하지만 작품을 세세히 살펴보면 공산주의를 비판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공산주의에 기반을 둔 독재체제(당시의 스탈린체제)를 비판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조지 오웰 개인의 반파시스트 경향과 사회주의 성향이 저서 내에서 독재에 대한 비판과 직시를 더욱 강화하였다는 평가도 있다.

 

조지 오웰의 1984는 어둡다. 어떤 독자들은 1984를 읽고서 디스토피아를 가장 먼저 떠올릴 수도 있겠다. 1984에서는 빅 브라더(Big Brother, 2000년대 이전 번역본에서는 대형-大兄-이라고도 호칭됨)라는 허구의 존재를 중심으로 세계가 통제되고 있다. 인간의 자유는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으며, 신체적 자유와 정신, 사회적 자유 또한 제한되고 있다. 이 때문에 공산주의 하의 공포정치와 많이 연관되기도 한다. 빅 브라더는 독재자를 나타내는 요소이자, 정보독점을 통한 사회통제권력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1984 내의 독재와 정치권력 하의 통제는 많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외의 요소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1년이 지난 지금, 1984를 다시 읽으면서 예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였다. 특히 당과 빅 브라더가 통제하고 있는 것들에 관해 생각하게 되었다. 1984 내의 빅 브라더와 당은 정치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요소들을 통제한다. 만약 그 요소들이 통제되지 않는다면 그 정치권력은 유지되지 않는다는 말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1984 내의 세계관에서 통제되고 있는 것은 정보와 역사만이 아니다. 인간의 이성과 자유 또한 철저히 통제되고 있다. 1984의 세계관 내에서 독재라는 비이성적인 정치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지성과 관철의 부재 때문이다. 이성과 언어, 판단, 자유라는 현대의 가치들은 1984의 세계관 내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정치권력이 모든 수단을 동원해 통제해야하는 것. 그것은 인간의 이성과 판단이다. 주인공 윈스턴은 당원으로 당에서 일하고 있지만 점차 빅 브라더와 당에 저항하는 행동을 보인다. 당원인 줄리아와 내연관계를 가지기도 하고, 실제로 당의 통제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이상을 세계관 내에서 관철할 수는 없었으며, 당에 발각되어 감옥에서 고문을 받게 된다. 그 결과 그는 이전보다 훨씬 사고할 수 없게 되었으며 빅브라더에게 더욱 충성하게 된다. 고문으로 표상되는, 주인공을 억압하는 권력은 주인공의 이성을 작동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그로 하여금 이전에 가졌던 현실에 대한 의문이나 반감이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하였다. 개인이 가진 이성의 침묵을 통해 1984 내의 비이성적인 상황은 유지된다.

 

1984에 나오는 수동적인 인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개인의 이성이 발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1984와 같은 사회적 구조 안에서는 이성의 발현 및 이행이 상당히 어렵다. 많은 것이 규제되고 통제된 이후이기 때문이다. 윈스턴이 혁명을 일으킨다든지, 빅 브라더의 실체를 밝힌다든지 같은, 세상을 구하는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못했다. 하지만 현대는 이성을 통한 발전이 가능한 시기이다. 현대는 1984의 세계관보다는 자유롭고, 개인과 집단의 이성을 통해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1984와 비슷한 여러 요소들이 서서히 등장하고 있다. 정보의 독점과 통제, 가치관의 억압 및 규정 등은 개인의 이성을 발달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성을 통한 판단보다 감정을 통한 직관적 행동에 의존해가고 있다. 어떻게 보면 1984에 나오는 지배받기 쉬운 사람들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현대에서 이성과 진중함은 더 이상 중시되지 않는 가치가 되었다. 전자기기-스마트폰과 컴퓨터-를 통해 모든 것이 이어지고 연결되는 세계에서 사유하고, 판단하는 것은 매우 즉흥적인 일이 되었다. 눈앞의 현실이 실제인지, 거짓인지, 혹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어떤 가치와 함의가 있는지 개개인이 사유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어떠한 전자기기에서든 정보가 제공되고, 전달되고, 양산된다. 현대사회에서 개개인은 제공된 정보를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개인은 제공되는 정보, 그 이상의 정보를 탐구하지 않는다. 자신의 내면과 생각을 더 바라보지 않고, 자신의 가치관을 구축하지 않는다. 자신에 대한 탐구와 내면의 성찰이 비어버린 그곳에는 더 이상 사유하는 개인-사회로부터 자유로운 개인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에 종속된 개인, 사회를 맹목적으로 유지하는 개인이 존재할 뿐이다. 우리가 지니고 있는 전자기기, 우리의 사유를 저해하는 전자기기는 텔레스크린과 다를 바가 없다.

 

1984 내에서는 다양한 것들을 통제하고 조작한다. 현재에 의해 과거가 조작되고, 수정된다. 언어도, 역사도, 시대도, 기록도 조작과 수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들은 모두 하나의 목적을 위해 조작되고 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사고의 폭을 좁게 하고, 1984 내의 인물들이 인식하는 것과 표현하는 것을 제한하기 위한 것이다.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단어가 적어지면, 인간이 할 수 있는 생각에도 한계가 생긴다. 접할 수 있는 기록이 적어지면, 그를 바탕으로 한 생각의 폭도 좁아질 수밖에 없다. 신어는 좋다라는 단어가 있으면, ‘나쁘다는 단어는 필요 없다고 말한다. ‘좋지 않다가 있기 때문이다. 기록들은 빅 브라더가 위대한 지도자이며, 오세아니아가 빅 브라더의 영도 하에 지속적으로 발전해왔다고 선전한다. 현대에도 과연 이러한 것들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그리고 현대인들이 1984 내의 수동적인 인간모형에서 벗어났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1984와 같은 사회,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결국 이성이 중시되어야 한다. 이성을 통해 무엇이 더 나은 삶인가, 무엇이 더 좋은 삶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지금의 체제는 옳은가? 더 나은 체제로 나아갈 수는 없을까?’ 에 대한 고민을 멈추게 된다면 사회는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없다. 무엇이 더 자유로운 사회이며, 사회가 보다 올바른 가치를 중시하고 있는가에 대한 고찰이 사라지게 된다. ‘무엇이 더 인간다운 것인가? 무엇이 더 인간적인 사유인가?’ 에 대한 고찰은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인식하고, 더 깊은 사유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러한 사유를 바탕으로 한 이행은 더 나은 인간, 더 나은 사회로 변화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한다. 1984 내와 같은 통제와 억압을 받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더 나은 이성과 판단을 토대로 사유하고 행동해야 한다. 개개인의 더 나은 이성과 판단이 자유의 진보를 불러오고, 1984와 같은 디스토피아를 구현하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정치외교학과 임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