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2.24.(화) 부커스 팀 ‘한량’ 모임 5회차
활동 내용과 활동계획 세우기
김애란 작가의 옴니버스식 구성의 『비행운』을 읽고 조원들과 각자 읽고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단편내용들을 이야기하며 느낀 점을 나누었다. 어떤 친구는 자신이 꽃힌 부분의 단편만 계속해서 읽는 친구도 있었고 어떤 친구는 책의 중반정도를 읽은 친구도 있었다. 같은 책을 읽었지만 서로 주목해서 읽는 부분이 달랐고 서로가 이야기해주는 책 이야기는 읽은 부분 이였지만 새로운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모임에서는 ‘비행운’의 의미와 이를 통해 작가가 표현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이야기 해보았다. 다음 회기의 모임에서는 『비행운』 속의 단편들 중 하나의 에피소드를 정해서 그 글의 결말을 상상해보고 글로 쓰는 것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2015.03.19.(목) 부커스 팀 ‘한량’ 모임 6회차
저번 활동에서 정한 것 처럼 책을 읽고 단편하나를 골라 이야기 끝을 각자가 원하는대로 지어보았다.
<김주영- 단편명: 하루의 축 >
엄마가 싫었다.
억척스러운 엄마가 싫었고 배우지 못한 엄마가 창피했고 나밖에 모르는 엄마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요즘도 엄마는 매주 나에게 면회를 왔고, 방황해도 괜찮아 같은 노골적인 메시지가 드러나는 책을 말없이 내려놓고 갔다. 나는 엄마가 준 책을 읽지 않고 엄마의 눈을 보지 않는다. 엄마는 내게 일주일에 한 번씩 사식을 넣어 주는 맘씨 따뜻한 무료배식 봉사자의 존재 그 정도일 뿐이다.
엄마는 닥치는 대로 일을 했지만 우리 집은 언제나 돈이 없었고 가난했다. 집안 화장실 휴지는 언제나 공항 화장실에서 엄마가 뻔뻔스레 챙겨온 변기통만한 두루마리 휴지였다. 중학생 시절 집에 놀러 온 친구들의 놀림이 부끄러웠고 엄마는 이런데서 다 돈이 센다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엄마는 세는 돈보다 한 움큼씩 세고 있는 자신의 머리를 먼저 걱정했어야 했다. 엄마의 머리엔 커다란 땜통이 생겼다. 나는 그 땜통이 나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고 되뇌이며 엄마가 집에서도 모자를 써줬으면 좋겠다고 간간히 생각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동창과의 약속에 10년만에 엄마의 지갑에 손을 댔다. 스무살도 훌쩍 넘은 지금 엄마의 지갑에 손을 대는 기분은 좌절감, 한심함 그 어떠한 것도 아니다. 그냥 돈이 필요했고 그 곳에 돈이 있어 손을 댔다. 내가 그냥 한심한 사람인 것처럼 특별히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엄마는 퇴근하는 길에도 주임의 눈치를 보느라 눈 앞에 버려진 쓰레기를 가방 속에 우겨 넣는 습관이 있었다. 면세품 알맹이만 쏙 뺀 포장지, 우유곽 그리고 꾸깃해진 여행사 팜플렛들이 보였다. 파아란 해변에서 서핑을 즐기는 사내와 바에 앉아 석양을 바라보는 비키니 걸들. 나는 아주 잠깐 그 팜플렛을 들여다 보곤 엄마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다시 정리하는 데 공을 들였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또 다른 종이 하나. 와킹호리데이, 어디서 들어 봄직한 단어였다. 해외에서 돈도 벌고 관광도 할 수 있단다. 저 곳에 가면 이 구질구질한 삶을 청산할 수 있을까?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변변치 않다. 택배 일을 하는데 한 배달에 나에게 돌아오는 돈은 30원이다. 한 달 동안 육십 만원 남짓을 벌고 달세 값을 빼면 나에겐 이십 만원 정도가 남는다. 잠시 서핑하고 있는 저 구릿빛 피부의 사내가 나와 겹쳐 보인다. 어쩌면 양 옆으로 비키니 걸들을 끼고 석양을 본 후 황홀한 밤을 보낼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게 부끄러웠다.
동창과 소주한잔 걸친 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와킹호리데이를 입으로 중얼거렸다. 멋있는 말 같기도 하고 소원을 들어주는 마법 주문 같기도 했다. 뱃삯만 있으면 거기서 돈도 벌고 관광도 할 수 있다는 게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뱃삯만 있으면 새 삶이 시작될 것만 같았다.
엄마가 이주 째 면회를 오지 않는다. 이곳의 밥은 영 허당이다. 나는 이곳에 온 후로 사람들과 대화를 하거나 사회에 나갈 때 필요한 기술을 배우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그저 하루를 보낼 뿐이다. 사식을 기다리면서.
<노윤지- 단편명: 서른 >
“제가 그 아이의 병문안을 가도될까요?”
언니에게 편지를 부친 지 한 달이 지났다. 편지는 반송됐다. 우표 40원어치가 부족했던 탓이다. 답장을 기다리는 한 달은 내 생에서 가장 두근거리는 날들이었다. 구직란보다 우편함을 뒤지는 것이 조금은 더 적성에 맞았기 때문이다. 우체국에서 일을 해볼까.
입 벌리고 나앉은 편지 속에는 나의 이-십대와 언니의 서른 그리고 여고생의 십대가 넘시르르. 떠들어댔으나 무엇 하나 젊은 것은 없었다. 냉장고 문을 열어 김치를 꺼내고 편의점에서 데워 온 햇반을 뜯었다. 고슬한 흰 쌀 밥 위에 묵은지를 올려 입 안 가득 밀어 넣었다. 훅- 하고 한 달 전 우체통에 편지를 밀어 넣던 때가 떠올랐다. 깜짝 놀라 우적 씹어 삼켰다. 배는 고팠지만 밥상 위에 생기 있는 것은 없었다. 냉장고에 뉘어있던 배추 꼴이 영 갑갑하여 입맛도 떨어졌다. 차라리 식물인간이 됐으면. 그래, 병원에 가야겠다. 그 곳에 가면 식물인간도 할 만한지 알게 될 것이다. 가는 길에 우체국 일도 알아보리라.
‘제가 그 병원에 가도 될까요?’
<조진희- 단편명: 벌레들 >
「나는 이 출산이 성공적일지 확신할 수 없었다.」
우리집, 장미빌라, 벌레, 그리고 남편이 선물한 결혼반지. 아이. 내 아이. 엉켜버린 실타래처럼 이것들이 머릿속으로 마구 쏟아져 들어왔다. 찢어지는 듯한 고통 속에서 나는 떠올렸다. 무엇이 문제인 걸까. 야속하다. 몸이 반쪽으로 나뉘는 듯한 아픔에 나는 울부짖었지만, 이는 곧 빗소리에 묻혀버리는 듯 했다. 정신이 아득해져왔지만 울부짖음을 계속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조그마한 달동네 골목 어귀에 누군가의 실루엣이 비에 젖은 채 다가오고 있었다. 나를 향해 다급히 무어라 외치는 듯 했지만 끝끝내 비는 나에게 소리를 허락하지 않았다. 제발. 내 아이. 외침은 속삭임이 되어 내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정신을 잃었다.
내가 눈을 떴을 때, 순백의 형광등이 내 눈을 아프리만치 빛을 내뿜고 있었다. 그리고 내 시야에 곧장 들어온 남편의 얼굴. 소박한 장미빌라의 가장. 나의 남편. 나와 아이를 위해 바쁘게 일하느라, 처음으로 내 전화를 받지 못한 나의 남편. 남편의 걱정 어린, 우스우리만큼 높은 톤으로 나에게 괜찮으냐고 물어보는 말들을 흘리고, 나의 아이를 떠올렸다. 아이는? 우리 아이는? 나는 비로소 나를, 내 몸을 내려다보았다. 형광등만큼이나 슬픈 흰 빛을 띈 이불과 옷. 그리고 배. 아이가 없는 내 배. 충격어린 눈으로 남편을 올려다보니, 나만 괜찮으면 다 괜찮댄다. 무슨 의미일까 생각하기도 전에 신경질적으로 물어본다. 아이는? 남편은 그제야 씩 웃어보이며 어딘가를 가리킨다.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어머니가 포대기에 감싸진 무엇인가를 안고 있었다.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나의 머리를 조용히 쓰다듬어주는 남편. 장미 빌라의 아이. 달동네에서 태어난 아이. 내 아이와 남편. 모든 것을 다 잃는 듯 했다. 결혼반지도, 아이도, 남편도, 나 자신도. 불과 하루 사이에 나는 그들을 내 곁으로 다시 불러 모았다. 든든히 붙들어 매었다. 날아든 불운은, 자유로이 나에게 종종 찾아드는 행복이 되었다.
<장유정- 단편명: 서른 >
비행운이라는 이름이 입에 착 붙으면서도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진 못했는데 알아보니
새로운 삶을 동경한다는 飛行운과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연쇄적인 불운이라는 뜻의 非行운이라는 뜻이 복합하여 표현한 이름이라고 나왔다. 둘의 뜻을 합치면 틀 안에 갇혀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는데 내가 읽었던 비행운 안의 단편들 중에 가장 가슴이 저려왔던 이야기는 맨 마지막 이야기인 [서른]이였다. “제가 그 아이의 병문안을 가도 될까요?”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이 문장이 그 소설의 마지막 문장 이였던 것 같다. 짧게 이 글의 줄거리를 알려주자면 주인공은 변변치 않은 직업을 전전하며 취업을 준비하는, 쉽게 말해 취준생이다. 이 소설은 주인공이 누군가에게 편지 쓴 내용으로 구성되어있는데 마치 내가 그 편지를 받는 사람인 것처럼 말하듯이 쓰여 있는 점이 특이하다. 주인공은 헤어진 남자친구로부터 다단계를 소개받고 벗어나지 못해 자신이 예전에 가르쳤던 학생인 여자아이를 다단계회사로 유인해 소개해준 뒤 자신은 그곳에서 벗어나게 된다. 하지만 그 여자아이는 다단계로 쌓인 빚을 갚지 못해 자살시도를 하게 되고 식물인간이 되어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제가 그 아이의 병문안을 가도 될까요?”였던 것 같다. 한참동안 책을 덮지 못했다. 담담하게 써내려간 편지(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쓴 편지글 이였으므로)가 마치 나에게 묻는 것 같았다. 한참 전에 추천 글을 보고 읽었던 이 책을 다시 이 부커스 활동에서 꺼내 읽게 된 건 이 이야기를 매듭짓고 싶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막장드라마의 포맷을 빌려오자면 주인공이 병문안을 갔을 때 만난 여자아이의 언니가 사실 주인공이 편지를 보냈던 아는 언니였다던가, 병문안을 갔는데 마침 여자아이가 식물인간상태에서 깨어난다던가 해서 주인공이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결말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그 여자아이를 그 지경이 되도록 만든 주인공이 벌을 받는 결말이 가장 무난한 결말일지도 모른다. 반대로 이런 결말은 어떨까? 주인공이 병문안을 가지 않고 그 편지도 쓴채 보내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 일을 잊은 채 취준생으로써 열심히 공부해 성공하게 된다. 남부럽지 않은 부와 명예, 지위를 갖게 되고 성형수술도 조금 받아 연예인까진 아니더라고 호감형의 외모를 갖게 된다. 그리고 대중들에게 인지도도 많이 얻은 스타강사가 되어 티비에 나와 말한다. “청춘 여러분, 여러분이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면 꿈은 당신의 것입니다.” 주인공은 변변치 않은 대학에 취업에 유리한 학과를 나온 것도 아니였고 스펙이 대단한 것도 아니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주인공은 성공했고 오히려 그런 낮은 스펙들은 수많은 취준생들에게 롤모델이 된 것이다. 주인공은 그렇게 탄탄대로를 걷게 된다. 주인공은 성공했다. 자신이 취준생 일 때 들었던 스타강사들이 했듯 청춘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며 꿈과 용기를 전해주는 그런 사람이. 주인공은 동경하던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으며 더 이상 연쇄적인 불운 같은 건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소설이 이어진다고 해도 그들의 ‘비행운’은 여전히 이어져나가는 것 같다. 여전히 취준생, 다단계, 스타강사, 어느 누구도 변함없이, 그 틀을 유지해간다. 아마 이렇게 이야기가 끝나게 된다면 취준생도, 다단계에 빠져 식물인간이 된 이름모를 여자아이도, 주인공이 보았었고 지금은 되어버린 스타강사도 영원히 이야기를 이어나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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