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작가'란 무엇인가?…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를 보며
올해 노벨문학상은 전통의 소설이나 시를 쓰는 사람이 아닌 현장의 목소리를 적는 논픽션 작가에게 돌아갔다. 허구가 아닌 사실을 기록한 논픽션은 순수 문학을 하는 작가들에게는 시큰둥한 작업일 수도 있지만, 스웨덴 한림원은 논픽션을 쓰는 작가에게 상을 줌으로써 문학의 영역에 대한 지평을 한 단계 넓혔다는 평을 받았다.
수상 작가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67)는 1986년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 후 살아남은 이들의 이야기를 현장 취재를 통해 인터뷰한 <체르노빌의 목소리>를 발표해 유럽은 물론 전 세계에서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체르노빌 사고를 겪은 사람들이 마치 핵전쟁 이후인 것처럼 살아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 이 작품은 수백 명의 생존자들 목소리를 직조하듯 담아냈다는 평이다.
그런가하면 1983년에 집필을 끝냈으나 검열 때문에 발표하지 못하다가 1985년에 출간된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거나 전쟁을 목격한 소비에트 여성 200명의 목소리를 담아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알렉시예비치는 “현실은 언제나 자석처럼 자신을 끌어당겼다”면서 “나를 고문하고 마취시킨 그 현실을 종위 위에다 포착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 이후, 작가의 양심적 역할 내지는 사명에 대해 숙고하게 되었다. 작가의 역할이 반드시 현실에 대한 관심 내지는 참여에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부조리한 현실을 외면하는 태도에는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애석하게도 우리나라에는 그런 예가 드물었다. 반면 일본은 놀랍게도 아픔의 현장을 취재와 인터뷰를 통해 논픽션으로 만들어낸 작가의 목소리가 있었다. 그것도 이름만 대면 다들 알 수 있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에 겐자부로와 일본 최고의 인기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였다.
오에 겐자부로는 1963년부터 1965년까지 직접 히로시마를 오가며 원자폭탄 투하로 피폭된 시민 가운데 생존해 있는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했다. 그는 인간의 존엄을 찾아 히로시마의 비참 속으로 걸어가서 그들의 목소리를 받아 적은 뒤, <히로시마 노트>라는 르포르타주를 발간했다. 이 기록문학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원폭 투하로 희생됐거나 살아남은 사람들의 고통과 슬픔을 담아낸 기록물로 주목을 받았다. ‘전후 일본의 양심’으로 일컬어지는 오에 겐자부로는 피폭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삶과 죽음, 고통을 관찰하고 기록함으로써 종전 20년이 지난 시점에서 ‘일본은 원폭을 어디에 어떻게 자리매김하고 있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1995년 3월 2일 출근시간 도쿄 지하철에서 일어난 독가스(사린) 살포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들의 인터뷰를 모은 르포르타주 <언더그라운드>를 책으로 냈다. 온 국민을 공황상태로 빠트린 이 사건을 통해 겉으로는 평온하고 안전한 것 같지만 내면 깊이 표류하고 있는 일본사회의 내면을 집요하게 파헤쳤다는 평을 받았다. 하루키는 옴진리교 신도가 출근길 시민들을 상대로 살포한 독가스로 3천800명의 피해자가 발생한 이 사건으로 형체 없는 사회로부터 받은 상처를 고발하는 한편 인간의 자기중심적 사고가 얼마나 남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지를 현장 취재와 인터뷰를 통해 보여주었다.
우리나라라고 왜 그러한 예가 없겠는가. 가까이 2014년의 세월호와 2009년 용산참사 철거민과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이들의 비극을 여러 각도에서 담아낸 기록문학이 있다. 세월호의 경우 소설가 15인이 공동으로 펴낸 추모 소설집 <우리는 행복할 수 있는가>와 치유를 위한 노력을 담은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세월호 추모시집 <우리 모두가 세월호 였다>, 작가기록단이 유가족 부모 13명을 인터뷰한 <금요일엔 돌아오렴> 등 성과물이 있다.
2009년 쌍용자동차 2천646명의 해고 발표 이후 시작된 77일간의 파업과 22번째 죽음까지를 현장 목소리로 담은 소설가 공지영의 르포르타주 <의자놀이>, 해고노동자 26인의 이야기를 적은 정혜윤의 <그의 슬픔과 기쁨>, 용산 철거민들의 목소리를 모은 <여기 사람이 있다>, 작가들의 릴레이 기고문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 역입니다> 등이 기록문학으로 역사에 남게 됐다.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둘째라면 섭섭해 할 우리나라 유명 작가들도 시대의 아픔을 감싸안으려는 양심과 의식으로 부단히 꿈틀거리고 있을 것이다. 오에 겐자부로와 무라카미 하루키가 시대의 아픔 속으로 걸어가 기록으로 남긴 것처럼.
DA 300
jijo@c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