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의 숲
“나를 기억해줬으면 좋겠어. 언제까지나 내가 있었다는 걸 기억해줄래?”
1960년대의 끝자락, 고도성장기의 일본에서 살아가는 청춘남녀들의 이야기 노르웨이의 숲. 주인공인 와타나베는 기즈키,나오코 커플과 어울려 다니는 한 청년이다. 기즈키와 나오코는 어릴 적부터 함께 자라며 둘만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커플이었고, 그런 두 사람에게 와타나베는 세상을 이어주는 연결고리와 같은 존재였다. 그러다 어느 날, 기즈키가 이유조차 밝히지 않은 채 자살을 했고, 남은 와타나베와 나오코는 큰 충격을 받게 된다.
둘만의 세상 속에서 살아가던 나오코는 자신의 세계를 잃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버티지 못한 나오코는 숲 속 요양원으로 들어가 살게 되고, 와타나베는 남은 나오코를 자신이 돌봐야겠다는 책임감을 느끼는 동시에 나오코를 좋아하게 된다. 남은 두 사람은 자주 시간을 함께 보내고, 몸을 섞지만 나오코는 죽은 기즈키에 대한 죄책감과 자기혐오, 치유되지 못한 상실감으로 결국 그녀도 자살을 택한다.
주인공은 분명 와타나베다. 그리고 그를 통해 주위의 여러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나는 나오코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너무 안쓰럽고 신경이 쓰여 주인공이 아닌 그녀의 감정선을 따라 이 숲을 거닐다 나온 것 같다. 나오코는 기즈키와의 삶 속에서만 ‘나오코’였다. 기즈키에 의한, 기즈키를 위한, 오직 기즈키와 함께하는 나오코였던 것이다. 그녀는 사회적동물인 인간에게 관계란 단지 ‘함께 살아가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의미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관계를 통해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즉, 자아가 형성되고 오직 그를 통해서만 내 삶의 의미를 정의할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나오코의 생각은,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철저히 요즘 내가 하던 말과 너무나도 같았다. 대학교 3학년이 지나가는 이 무렵, 이제야 나를 움직이는 것이 오직 칭찬과 보상, 남들의 인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건 너무나도 외로운 마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인정해주고 내 세상을 온전하게 만들어주는 관계의 상실은 나오코에게 ‘존재할 이유의 상실’이 되었을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와타나베에게도 자신을 기억해줄 것을 당부하고, 사랑해보려고 하지만 실패했던 나오코의 결말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었다.
스스로에게 다시 한 번 물었다. 내가 배우고 얻은 것들에 감사하고, 만족하는 것으로는 안되겠냐고. 꼭 남들에게 인정받고 기억되어야만, 너의 삶이 의미가 있는 것이냐고. 내 자신과 매번 약속하지만, 열심히 한 만큼 보상받고 싶은 마음, 누군가 나의 힘듦을 알아주고 인정해줬으면 하는 마음은 쉽게 버려지지가 않는다.
그러나 관계의 상실에 무너져버리는 연약한 자아를 가진 나오코의 결말이 결국 ‘자살’이었고, 남에게 보이고 싶은 모습과 나의 진짜 모습이 다름을 알고 자괴감을 느낀 기즈키도 역시‘자살’을 택했음을 기억한다면, 조금씩 나를 위한 마음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한결 단단해졌을 내 자신을 느끼며 이 숲을 떠나려한다.
-유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