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장 대신 공연장 서는 저자들
[인문학 콘서트·토크쇼 등 공연 성황]
강연 시장 이후 모색하다 공연 발견… 독자, 이젠 책으로만 지식 쌓지않아
팟캐스트 등 다른 통로로 소통·공감, 정보+오락 '인포테인먼트'의 트렌드
도정일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학장과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28일 저녁 서울 대학로 공연장으로 '출근'했다. 강단이 아닌 무대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유니플렉스(650석)에서 열린 인문학 콘서트 '대담'. 두 사람의 대담과 인터뷰를 묶은 책 '대담'의 출간 10주년을 앞두고 융합적 사고와 실천이 어떻게 가능한지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이질적으로 비치는 인문학·자연과학의 만남답게, 청중(또는 관객)은 이날 기타와 해금 앙상블 연주도 들었다.
강연장에서 공연장으로 저자들이 이동하고 있다. 공연 예매 사이트 인터파크는 강연 상품도 판매한다. 김미경 톡앤쇼 '나 데리고 사는 법', 유시민의 '현대사 콘서트', 말콤 글래드웰의 '더 원 토크'…. 표값은 최고 6만원. 지난 25일 끝난 '나 데리고 사는 법'은 전석 매진에 가까운 호응을 얻었다. 인터파크도서는 11월 11일 블루스퀘어에서 여는 유시민의 '현대사 콘서트'를 시작으로 저자와 공연을 결합한 '북잼 콘서트'를 이어갈 계획이다.
◇왜 공연장일까
강연의 글로벌 선구자는 미국에서 시작된 TED였다. 기술·오락·디자인의 머리글자를 딴 이 대중 강연은 제한시간 18분 안에 생동감 넘치는 주제 발표로 강연 열풍을 일으켰다. 커피 한 잔 마실 짧은 시간에 알맹이 있는 지식을 전달받게 된 셈이다. 오프라인 강연의 경우 저자와 독자의 직접 소통이라는 욕망을 해결해줬다.
저자가 강연장에 이어 공연장으로 간 까닭은 "책이 안 팔려서"다. 출판사들은 몇 년 전부터 강연 시장을 뚫어 책을 팔아왔고, 집필 능력 외에 입담과 네트워크(SNS)에 능한 저자가 더 나은 대우를 받았다. '그 이후'를 모색해야 하는 상황에서 공연이 재발견된 것이다.
'대담'을 기획한 황서현 휴머니스트 편집장은 "지식은 더 이상 책으로만 흡수되는 게 아니고 독자는 팟캐스트 등 다른 입구를 통해 책을 만나고 있다"면서 "강연장이 아닌 공연장에서 만나 소통하고 공감하면서 새로운 텍스트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김동업 인터파크도서 대표는 북잼 콘서트에 대해 "강연장에서 열리는 독자와의 대화는 저자의 팬층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평소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책과 가까워질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식도 엔터테인먼트다
독자는 이제 '지식 공연장' 입장권을 사고 있다. 출판평론가 표정훈 한양대 교수는 이런 변화에 대해 "강연이 엔터테인먼트가 된 것"이라고 정의했다. "저자들이 공연장으로 이동하는 것은 좋든 나쁘든 지식에 대해 입장료를 지불하는 데 대한 거부감이 없어진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인포테인먼트(정보+오락)'라는 말도 이미 나왔다.
'나 데리고 노는 법'은 김미경이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고 강연과 게스트와의 대화를 더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주명석 21세기북스 이사는 "당초 기업 단체 판매에 의존해야 하는 것 아닌가 염려했는데 표가 거의 다 팔렸다"며 "20~30대 여성이 60%에 이를 만큼 시장성이 확인됐다"고 했다.
티켓몬스터는 '춘천 가는 인문학 열차'(11월 8일)를 판매 중이다. 춘천 KT&G 상상마당이 기획한 지식여행 상품. 도서평론가 이권우의 강의, 김유정 문학촌 탐방, 왕복 교통비, 닭갈비 중식 등을 묶어 6만4000원이다. 경춘선 전철 안에서는 "춘천 가는 기차는 나를 데리고 가네/ 오월의 내 사랑이 숨쉬는 곳~"(김현철 '춘천 가는 기차')을 함께 부른다. 지식도 엔터테인먼트다.
조선일보 박돈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