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國 된 프랑스'에 80만 유럽 독자 열광하다
박해현 문학전문기자
(지난 1월 19일 독일 쾰른에서 열린 문학 축제에 참석한 프랑스 작가 미셸 우엘베크. /AP 뉴시스)
[미셸 우엘베크 소설 '복종' 佛·獨·伊 3개국 판매 1위]
무슬림, 佛대통령 되는 假想 "反이슬람이냐, 풍자냐" 논란
서구의 몰락 분위기 반영… 유럽인 심정 대변해 인기
프랑스 작가 미셸 우엘베크(57)가 2022년 프랑스 대선에서 무슬림(이슬람 신도) 대통령 후보가 당선되는 상황을 가상(假想)해서 쓴 소설 '복종'이 프랑스·독일·이탈리아에서 나란히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 '복종'은 지난 1월 7일 프랑스 파리에서 샤를리 에브도 테러가 터진 날 출간된 뒤 프랑스에서만 현재까지 34만5000부 팔렸다. 동시에 나온 독일어 번역본은 27만부, 일주일 뒤 나온 이탈리아어 번역본은 20만부가 나갔다.
AFP를 비롯한 프랑스 언론은 '복종'이 서유럽 3개국에서 단숨에 일으킨 돌풍에 대해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전했다. 샤를리 에브도 테러 이후 이슬람 공포증이 확산된 가운데 프랑스의 몰락을 우울하게 내다본 작가의 도발적 상상력이 요즘 서유럽 독자들의 심정을 대변했기 때문이다.
'복종'의 주인공은 소르본 대학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딴 지식인이다. 그는 날이 갈수록 쇠락해가는 프랑스 사회에서 앞날이 불투명한 탓에 우울하고 무기력하게 살고 있다. 그의 삶은 2022년 프랑스 대선이 뜻밖의 결과를 낳으며 급격한 변화의 계기를 맞는다. 이 소설은 현실에선 아직 존재하지 않는 무슬림 정당의 집권을 상상한다. 프랑스에서 반(反)이슬람 정서에 힘입어 극우파 정당의 대선 승리가 예상되자 중도 좌우파 정당이 무슬림 정당 후보를 밀어줘 당선시킨다는 것.
무슬림 대통령이 취임한 뒤 프랑스가 이슬람 율법의 통치를 받게 된다. 코란 교육이 실시되고, 여성의 권리가 제한되면서 일부다처제가 허용된다. 동시에 중동 산유국 자본이 밀려와 경제가 활기를 띤다. 산유국 자본이 인수한 대학에선 이슬람으로 개종한 사람만 교수가 될 수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도 소르본대 교수가 되려고 무슬림으로 개종하고, 일부다처제를 이용해 성적(性的) 환상을 충족하려 한다.
'복종'은 출간 직전부터 프랑스 사회에서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무슬림 지식인들은 "이슬람을 향한 서유럽 사회의 공포를 자극하고, 반이슬람 정서를 선동한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작가 우엘베크가 9·11 테러 직후 "이슬람은 가장 멍청한 종교"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한 적도 있기에 소설 '복종'이 순수한 창작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
우엘베크는 처음엔 "그냥 풍자소설을 썼을 뿐"이라며 시큰둥하게 대꾸했지만, 샤를리 에브도 테러가 터지자 이 책 판촉 활동을 중단하고 잠적했다. 그러나 그는 독일 쾰른에서 열린 문학 축제에 나타나 "나는 이슬람 공포증에 관한 책을 쓴 것이 아니다"면서도 "누구나 이슬람 공포증에 관한 책을 쓸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소설은 반이슬람을 표방하는 프랑스의 극우파 정당 '국민전선'을 이롭게 한다는 지적도 받았다. 작가는 "내가 알 바 아니다"며 "소설책 한 권을 읽고 나서 지지 정당을 바꾼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프랑스 소설가 에마뉘엘 카레르는 "우엘베크 소설은 조지 오웰의 '1984'와 같은 계보에 속한다"며 "오늘날 프랑스 문학뿐 아니라 세계 문학에서 우리가 분석도 하지 못한 채 겪고 있는 거대한 변화에 대해 생각하는 작가가 있다면 그는 우엘베크다"고 옹호했다. 그러나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는 "나는 '복종'이란 제목이 맘에 들지 않고, 이 책을 아마도 읽지 않을 것"이라며 "프랑스인들에게 이슬람을 두려워하라고 말하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기 때문이다"고 비판했다.
☞미셸 우엘베크
2010년 소설 '지도와 영토'로 공쿠르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다. 그는 1998년 소설 '소립자'를 펴내면서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문단에서 늘 논쟁의 중심이 됐다. '소립자'는 68혁명 이후 풍속도의 변화를 냉소적으로 그리며 서양 문명의 자멸을 내다봤다. 그의 소설 5권이 우리말로 이미 번역됐다. '복종' 한국어판은 올해 상반기 중 문학동네출판사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