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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클럽 '부커스' /감상문

‘자기 앞의 생’을 읽고

의 층계를 거닐며

자기 앞의 생을 읽고

 

여로 이유진

 

비행기를 탈 때 나는 늘 창가 자리를 고집한다. 이륙을 알리는 기내 방송이 귓가를 울리고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이내 자세를 고쳐 앉고 창밖을 열심히 살핀다. 바깥풍경에 매번 주체할 수 없이 가슴이 뛴다. 옹기종기 모여 앉은 엇비슷한 크기의 집들, 청록색 연필로 콕콕 찔러 놓은 듯 듬성듬성 눈에 띄는 나무들과 미로처럼 나 있는 도로들까지, 이 모든 것들이 내 마음을 사로잡는 이유는 단 하나다. 상공에서 내려다보는 지상의 풍경이 더없이 평화롭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갈하게 잘 차려진 요리에 고명 얹듯 마을 위로 흩뿌려진 구름들은 한적한 분위기마저 더한다. 그런데 그 언젠가 찰리 채플린이 인생을 두고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 하지 않았던가. 렌즈를 조금 더 당겨 자세히 살펴본 풍경에 담긴 내용은 사뭇 달라진다. 엇비슷해 보이던 집들이 제각기 다른 높이로 솟아 있었고, 듬성듬성 눈에 띄는 나무들은 같은 청록이라도 채도에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그 까닭에 미로처럼 나 있는 도로들보다 더 많은 구역들로 사람들은 나뉘어져 있었다.

 

비행이 끝나면 공항에 착륙하는 비행기와 동시에 우리는 각자가 속한 사회에 다시금 착륙하게 된다. 그 사회에서 모두는 개별적으로 지니고 있는 조건들에 맞춰 세세하게 '분류'된다. 분류의 기준은 국가, 인종, 종교, 성별 등의 가시적 형태를 띌 수도 있고 성격, 가치관 등의 비가시적 형태를 띌 수도 있다. 그 결과 내가 속한 국가나 종교 등이 시대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을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사회의 중심이 되곤 한다. 반면에 불리한 위치에 속해 있으면 변방으로 밀려나게 되는데, 이렇듯 밀려나거나 소외된 사람들은 현대 사회의 표현에 의해 주변인이라 일컬어진다.

 

그러나 그들이 늘 주변인으로 머물러 있는 것만은 아니다. 때때로 소설가들이 소설 속에서 주변인들을 주인공으로 둔갑시키는 아량을 베풀기 때문이다. 물론 그 안에는 주변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움으로써 그 사회가 풀어가야 할 이야기들을 담아내기 위한 일말의 계획이 숨어 있는 경우가 숱하다. 에밀 아자르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그는 모모라는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 없는 열네 살 소년을 위시해 당시 프랑스 사회의 단면들을 자기 앞의 에 쏟아냈다. 파리 동쪽 끝의 빈민가 벨빌(Belleville) 비송 거리에 분주하게 수놓인 발자국들의 주인공은 고아와 창녀, 이주 노동자와 성소수자 등 소위 변방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살아가는 공간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고 사회적 위치 역시 마냥 초라하기만 했다. 그러나 그들이 일궈내는 삶은 오히려 풍요로웠으며 작가는 모모의 특별한 질문을 통해 그것을 증명해 냈다. 하밀 할아버지, 사람이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나요?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라는 선현의 조언이 우리의 주인공 모모마저 감동시킬 것이라는 보장은 하지 않는 편이 좋다. 사무치는 외로움을 홀로 감당해 나가기엔 부모의 온기가 너무나도 그리운 어린무언가를 하기에 어린 나이는 없다고 말하는 속 깊은 모모에게 쓰기엔 미안한 표현이지만아이였기 때문이다. 모모는 사랑을 찾아 거리로 나선다. 그러다 간혹 자신을 지극히 아껴주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지만 그들과 사회적 조건이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고는 이내 실망한다. 결국 모모가 찾게 되는 단 하나의 안식처는 투닥투닥 매일을 함께 보내던 로자 아줌마다. 과거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유태인으로서 겪었던 질곡의 세월들에 대한 깊은 상처가 있는 로자에게도 모모는 마찬가지였다. 키우던 수많은 아이들을 입양 보내고 마지막까지 곁에서 함께한 아이여서다. 사랑은 먼 곳에 있지 않았다. 각자의 상처에 잠식되어 살아가던 그들은 도돌이표를 만난 음표들처럼 사랑을 찾아 헤맸고, 끝끝내 바로 곁의 서로라는 마침표를 만난 것이다.

 

이 둘의 관계가 더욱 소중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상대를 보살피는데 아무런 조건이 없었다는 것에 있다. 살다 보면 불가피하게 우리를 규정하는 이름표가 붙여질 때가 있다. 누군가는 모모처럼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 고아일 수도 있고 앞이 보이지 않거나 귀가 들리지 않는 장애인일 수도 있으며, 분쟁이 끊이지 않는 지역의 난민일 수도 있다. 우리가 가진 조건들의 형편을 세심하게 감안하여 붙여지는 이 사회적 이름표는 종종 거대한 편견이 되어 서로를 갉아먹는다. 그런데 로자 아줌마와 모모는 서로의 사회적 이름표를 전혀 개의치 않았다. 창녀, 유대인, 고아…… 그들에게 사랑이란 그 이름표를 떼어내는 일과도 같았고 덕분에 세상이 씌워놓은 편견의 굴레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었다. 불공평한 세상에서도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자격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사랑이라는 것을 그들은 일찍이 알고 있었기 때문일까?

 

세월이 흐르고 의 편린들이 켜켜이 쌓이자 자연스레 찾아온 로자 아줌마의 죽음처럼, 모든 존재의 에는 필연적으로 죽음이 찾아온다. 그런가하면 모든 소설에도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결말이다. 때때로 여운이 깊은 결말은 우리를 그 안에 가둬 며칠 밤을 빠져나오지 못하게 한다. 나는 자기 앞의 의 결말에 아주 단단히 갇혀 버렸다. 모모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간을 만드신 분은 체면 같은 게 없으신 탓에 내 눈 안에 붙박이장처럼 내재된 눈물이 쉴 새 없이 줄줄 흘러내린 것이다. 열네 살이 되기까지 사랑으로 자신을 보살펴준 로자를 이제는 모모가 보살핀다. 사랑하는 사람을 좀 더 오래 곁에 두고 싶었던 모모는 그녀가 좋아하는 화장을 해 주며 그녀를 간직한다. 이토록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해 주는 단 한 사람이, 에밀 아자르의 잉크가 원고지에 스며드는 농도보다도 더욱 깊은 농도로 그녀를 사랑해주는 모모가 있었으니 로자는 분명히 행복했을 것이다. 이는 또한 벨빌 비송 거리가 비록 화려하진 못했어도 충분히 풍요로울 수 있었던 이유이다. 서로에게 하나뿐인 안식처가 되어준 '모모와 로자 아줌마'는 사람이 과연 사랑 없이 살 수 있는지에 대한 종전의 물음에 명쾌한 대답이 된다.

 

여태껏 나는 단 한 번도 이 따뜻한 이야기꾼의 실명을 밝히지 않았다. 문단文段들이 번식을 거듭하는 동안에도 작가에 대한 언급은 늘 에밀 아자르로 일관했다. 그래서 결말이 이야기되는 이쯤에서 조심스럽게 진실을 밝혀보고자 한다. 에밀 아자르는 유명 작가인 로맹 가리와 동일 인물이다. 사랑해야 한다, 내가 읽은 소설 중 마무리가 가장 아름다웠던 이 문장을 남긴 채 그는 63세의 나이에 권총 자살을 했다. 소설의 마지막과는 다른 로맹 가리의 허무한 죽음에도 자기 앞의 이 주는 메시지는 변하지 않았고 모모가 전해주는 사랑의 위로는 변색되지 않는다. 호랑이가 죽어서 가죽을 남기는 것처럼 소설가는 죽어서 작품을 남기기 때문이라고 하면 비유가 얼추 맞아서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의 죽음이 여전히 안타깝다.

 

만약 삶이 하나하나의 건물이고 각각의 층계가 일련의 사건들과도 같다면, 겪어내기 버거운 사건들 앞에서 우리는 걸음이 느려질 것이고 그 층계에서 보다 오래 머물 것이다. 육중한 몸으로 7층을 오르내리다 지친 로자 아줌마처럼 삶의 무게에 질식할 것 같을 때도 있을 것이고 사랑하는 로자 아줌마를 떠나보낸 모모처럼 막막할 때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살아간다는 것은, 다시 말해 의 층계를 거닌다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생(La vie devant soi) 앞에서 무너지지 않고 당당히 나아가야 한다. 모모가 친절히 알려주었듯 우리의 곁에는 늘 사랑이 존재하니까 말이다.

 

모모, 그리고벨빌 거리에서 복닥거리며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하루가 풍족한 저녁 식사와 충분한 대화거리로 오늘도 가득했으면 좋겠다. 세상 곳곳을 평등하게 내리쬐는 햇빛이 우리네 삶의 층계들을 꼼꼼히 비춰 준다면 더더욱 좋겠다. 그러고 나는 내 의 층계를 거닐며 곳곳에 펼쳐진 사랑을 발견할 것이다. 사랑해야 한다. 하루 이틀 주름이 늘어가는 가족들, 오래 봐 왔기 때문에 때로는 지루한 얘기로 시간을 때우게 되는 친구들, 그리고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여러 곳의 손길들까지 단 하나도 놓치지 않고 사랑할 것이다. 신호는 우리를 향해 깜박이고 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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