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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클럽 '부커스' /감상문

아직 끝나지 않은 1984, 우리의 현재 그리고 미래

 

‘1984’1949년에 쓰여진 디스토피아 3대 소설중 하나로 21세기, 고도의 정보화 사회에 던지는 조지 오웰이 경고가 잘 담겨져 있다. 거대한 지배 체제하에 놓인 개인이 어떻게 저항하고 어떻게 파멸해 가는 가를 담은 책으로 읽는 내내 갑갑하고 또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이 책의 저자 조지 오웰은 인도에서 태어난 영국인으로 1922년부터는 인도 미얀마에서 제국경찰로 활동했다. 경찰로 활동하면서 그는 목격한 제국주의의 허구성과 자신의 직업에 대한 환멸을 느꼈다. 이에 그는 속죄하기 위해서는 작가가 돼 제국주의의 허구성을 알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1차 세계대전과 경제불황으로 사람들은 지배계급에 대한 신뢰를 잃었고, 혁명을 원했다. 이때 공산주의와 파시스트가 등장했고 히틀러나 무솔리니는 절대복종을 강요하며 절대적인 지도자로 부상했다. 과학의 발전과 함께 세계 곳곳에서 독재체제가 늘어갔고 과학의 발전은 인간의 행복을 보장하는 역할을 하기보다는 비인간화를 조장하는 도구로 쓰이게 됐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저자는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해 주고 개성이 발휘되는 사회보다는, 공포와 통제 속에서 진실은 사라지고 인간의 가치를 부인하도록 빈틈없이 조작된 국가가 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 그런 사회가 건전한 인간의 정신을 짓밟고 억눌러 얼마나 인간성을 파괴시키는 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이 책에서 극단적 전체주의 사회를 나타내는 오세아니아에서 빅 브라더라는 인물을 내세운 당은 국민들을 통제시키고 텔레스크린, 사상경찰, 마이크로폰, 헬리콥터 등을 이용해 철저한 감시를 한다. 이 당은 계속해서 과거를 날조하여 국민들을 통제 하에 두려한다. 인간의 성욕마저 억압한 체 당은 계속해서 국민들을 억압하는데 이에 주인공 윈스턴은 반발을 느끼고 맞선다. 그러던 중 사랑하는 이인 줄리아를 만나 함께 당에 맞서고자 하지만 오브라이언이라는 사상경찰에게 속아 감옥에 갇히고 만다. 그는 결국 굶주린 쥐 앞에서 사랑을 포기하고 사상마저 포기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저 모든 것을 포기한 체 빅 브라더를 사랑하고야 만다. 마지막 결말마저 쓸쓸한 이 ‘1984’는 발표 당시 소련의 전체주의를 비판하면서 미래에 대해 예언한 소설이라는 평을 받으며, 세계 여러 나라로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고 한다.

 

허나 미국 트럼프 정권이 집권 한 후 ‘1984’, 이 책은 다시 한 번 베스트셀러가 되고야 만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은 위대한 미국을 만든다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나타난 기이한 현상으로 지금 미국이 이러한 방향으로 흘러갈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1984’는 소설이지만 이러한 일이 실제로 우리에게 일어나고자 한다.

 

유토피아, 그리고 디스토피아

이 책은 디스토피아 3대 책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사랑하며 많이 읽는 이유는 이 디스토피아 책을 통해 유토피아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기 때문인 듯하다. 디스토피아는 유토피아의 반대개념으로 정말 오지 않았으면 하는 세계를 말한다. 또 다른 디스토피아의 책 중 하나로는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들 수 있다. 이 책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계급이 결정된 사회가 존재한다. 자기 계급에 맞는 역할만 하도록 개조된 인간. 모든 감정과 생각이 철저하게 통제되는 시스템으로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지 않는다. 이 책은 중학교 때 매우 감명 깊게 읽었던 책 중 하나였다.

 

유토피아는 Utopia [ju:|topi]로 이상향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이는 토마스 모어가 만들어낸 개념으로 '유토피아'는 하나의 '섬나라'로 묘사된다. 이는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라는 책을 살펴보면 잘 나와 있는데, 인구 10만명 가족 단위로 이루어진 유토피아는 50가구 당 하나의 집단으로 인정된다. 하나의 집단의 지도자 시포그란트가 존재하고, 다시 시포그란트 중에서 왕을 선출한다. 왕의 임기는 평생. 허나, 시민들의 뜻에 의해 언제든지 '퇴위'당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의 한계이기도 하지만 유토피아에는 자폴렛이라는 '군대'가 존재한다. 하지만 자폴렛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수칙은 자못 놀랍니다. ‘전투에서 승리할 경우, 본인도 함께 죽어야 한다.’ 이 수칙으로 인해 군대는 한번 박에 사용할 수 없는 '소모품'이 되어 ''에 의한 '독재'는 불가능하다. 유토피아의 모든 시민은 '동등'하며 모든 시민들은 하루에 6시간 '노동'을 해야만 한다. 또한 유토피아에는 '화폐'가 존재하지 않으며 시민들은 각자 필요한 만큼 물건을 가져다 쓰면 된다. 결국 모든 사람들의 '자유''평등'이 보장되는 세상이 '유토피아'인 것이다.

 

또한 이런 유토피아를 잘 나타내는 또 다른 소설은 홍길동전이다. 홍길동전에는 율도국이 존재하는데 율도국 또한 호부호형 할 수 없었던 서자 출신의 홍길동이 만든 유토피아로 신분이 없는 평등한 사회였다. 이렇게 디스토피아 책들과 유토피아 책들을 살펴본 결과 우리가 원치 않는 디스토피아는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지 않는 세상이며 우리가 원하는 유토피아는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는 세상인 것 같다. 이러한 내용은 ‘1984’에도 잘 나오는 듯하다. ‘1984’ 당의 세 가지 슬로건은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이다. 이만 보더라도 우리가 나아가야할 유토피아가 보인다고 생각된다.

 

우리는 항상 이렇게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는 유토피아를 꿈꾼다. 누구나 꿈꾸는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는 세상. 허나,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책의 마지막 문장은 이러하다.

 

그러나 고백하건데 유토피아에서 행해지고 있는 많은 일들이 우리나라에서 모방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그렇게 되리라고 정말로 기대하지는 않지만.”

 

또한 '유토피아'의 그리스어 어원은 다음과 같다. 'ou'(없다) + 'topos'(장소) = 존재하지 않는 장소. , 이 유토피아를 생각해낸 토머스 모어조차 이런 세상은 존재할 수 없다고 여겼다. 과연 이런 유토피아 가능한 것일까?

 

결코 우리가 완벽한 유토피아를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좀 더 평등하게, 좀 더 자유롭게, 지금보다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지금 우리의 현실은?

그럼 지금 우리 현실은 어떠한가? 우리나라는 ‘1984’처럼 이러한 통제를 받고 있지는 않을까? 이에 나는 모두들 슬픈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일단 ‘1984’를 살펴보면 ‘1984’속 세상에는 빅 브라더가 존재한다. 빅 브라더는 기술, 정보 독재를 통해 끝없는 감시, 우민화 정책, 끝없는 전쟁과 위기를 조성한다. 그리고 2분 증오의 시간을 통해 혐오의 시간을 가지는 것을 지배 메커니즘으로 하여 신어라고 불리는 언어 교정으로 언어를 단순화시킴으로써 생각하저 단순하게 만든다. 이는 모두 자유를 생각할 수조차 없게 사람들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소설 속의 이야기일까? 전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의 국토안보부는 애국자법을 통해 국가가 시민을 감시할 수 있게 되었다. 영국은 테러방지를 위해 감시기관을 만들고자 하고, 우리나라 또한 예외는 아니다. 우리나라는 국정원 민간인 사찰, 카카오톡 사칭, 테러방지법 등으로 한차례 국민들의 질타를 받았지만 여전히 감시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자세히 살펴보면, 빅 브라더의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일부 정권에서는 댓글 알바를 사용해 정치적으로 국민들을 선동하며 언론을 이용해 국민들의 알 권리를 무시하고 자신들의 편의에 맞게 편성을 하는 등 국민들을 통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렇듯 우리는 항상 감시와 통제망 하에 살아가고 있다. 1949년에 쓰여진 디스토피아의 대표인 이 책이 오늘날과 다를 바 없는 것은 정말 절망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권력은 타인을 괴롭힘으로써 행사할 수가 있네. 복종으로는 충분하지 않네"(p.373)

 

"지식이라는 것은 여차하면 완전히 지워져 버릴 그의 의식 속에만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만일 사람들이 당의 거짓말을 믿는다면 -그리고 모든 기록들이 그렇게 되어 있다면- 그 거짓말은 역사가 되고 진실이 되는 것이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이것이 당의 슬로건이다."(p.53)

 

‘1984’에서 내가 제일 기억에 남는 대목들이다. 이렇게 소설 속에서 국민들은 빅 브라더의 통제 아래, 텔레스크린의 감시아래에서 숨죽이며 살아가야 했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권리도 박탈당하고 인간의 쾌락도 금지당하는 그 시대에 사는 주인공에게 희망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 또한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현실이 이와 비슷하지 않나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는 날조되지는 않지만 선동을 통해 무지한 국민들을 농락하고 자신들이 정당한 것처럼 과거를 지배해 미래를 지배하려고 하는 정치인들이 많이 존재한다. 이는 정말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감시는 깊게 뿌리박혀 있다. CCTV, SNS, 인터넷 등을 통해 감시는 묵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24시간 CCTV가 우리를 감시하고 있으며 SNS는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게 만들고 있다. 이에 거대 IT기업들은 빅 브라더가 될 수 있다. 인터넷에서도 어떤 물건을 살 때도 인터넷 속의 빅데이터가 검색기록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줄 것을 조작한다고 한다. 실제로 나 또한 내가 예전에 검색했던 기록들로 인해 다음에 검색할 때 관련 광고들을 받고는 화들짝 놀라곤 했다. 이는 나 하나만의 경험이 아닐 것이다. 모든 이들이 이러한 경험을 한번쯤 해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자주 검색기록이 지우는 등 빅 데이터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 모두들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또한 일부 정권 때 댓글 알바가 성행해 인터넷 뉴스가 나오면 댓글 알바를 통해 우리를 감시하고 선동하였다. 그리고 일반 국민 개인의 인터넷 기록 등을 국가가 관람하는 것 또한 항상 우리가 감시당하고 있는 예에 속한다.

이러한 것들은 사실 비단 ‘1984’ 소설 속에서만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생활 곳곳에 깊숙하게 들어와 있는 것 같다. 그렇기에 이 ‘1984’는 읽으면 읽을수록 화가 났고 안타까웠던 것 같다. 이러한 감시와 통제 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날이 과연 올까? 우리가 이런 감시와 통제가 없는 자유로운 세상에 살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할까?

 

이 책은 소설이지만 마냥 즐거운 마음으로 가볍게 읽을 수가 없었다. 암울한

우리 현실세계를 담고 있어서 일까? 우리에게 숙제를 마구 던져 주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져 온다.

조지 오웰의 ‘1984’1948년에 완성되고 19498월에 출판됐다. 그는 결핵으로 1950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그가 생각한 아주 먼 미래는 1984년 정도 됐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1984년은 끝나지 않았다. 현재이고, 미래인 것이다.

 

-고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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