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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ium] 좌절(OTL)금지! 나에게 좌절은 없다.

 

"좌절금지, 우는건 반칙." 

  열개도 넘는 직업을 거치며 부산스럽게 살아가는 동안 세상이 나에게 들려준 문구다.
  내가 인터넷에 올린 글이 책으로 나오고, 드라마로 만들어진 건 사고이거나 우연이거나 멍에였다. 등단한 경력이나 이렇다할 학력이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쏟아져 들어오는 원고청탁이나 연재 제의를 해낼 만한 역량이 준비되지 않았다. 나는 얼마 안 가 세상에서 잠식되었고,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알맹이 없는 작가로 굳어졌다. 대학생 때나 책을 쓰기 전처럼 아르바이트하는 생활로 돌아가야 했다. 왜 더 열심히 하지 않았을까, 왜 나는 이것밖에 안될까. 슈퍼에서 매대를 정리하고 편의점에서 야간 일을 하노라면 하루에도 몇 번씩 눈물이 쏟아졌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모두가 태만한 결과였다.  밤에 편의점으로 먹을거리를 사러 들어오는 손님 중에 택시운전이나 대리
운전하는 사람이 많았다. 계산할 때 돈을 내미는 그들 손을 여러차례 보다, 문득 세상엔 손가락이 서너 개 없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았다.  몇 개 남지 않은 손가락으로 빵과 우유를 허겁지겁 먹고 손님을 태우러 뛰어나가는 아버지들을 보며, 겨우 요만한 일에 우는 내가 몹시 부끄러웠다. 한밤중에 일당을 벌려고 달려가는 그들은 늘 피곤해 보였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좌절을 딛고 일어서는 중이었다. 빨간 핏줄이 불거진 내눈처럼 그들의 눈에도 피로가 가득했다. 그러나 어린것들의 아버지인 그이들이 빵을 씹어 삼키고 도로로 달려 나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좌절금지를 다시 기억해 냈다. 


  아르바이트하는 동안 책을 읽고, 글 쓰는 법을 처음부터 익혔다. 아침에 퇴근하면 근처

대학에 가서 청강했다. 소설쓰기 강좌를 열어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과 공감했다. 그리고 1인 출판사를 만들어 나의 가장 큰 좌절이자 희망이던 책, <옥탑방 고양이>를 다시 써서 출판했다. 소리 내 웃고, 낮아진 자존감을 회복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등단 못했으면 어때, 쓰고 싶은 거 쓰면 되지. 준비가 덜됐으면 어때, 지금부터 준비하면 되지. 일류가 못되면 어때, 난 이류나 삼류는 되는걸. 좌절하고 우는 것보다 근거 없어도 자신감에 찬 게 멋지잖아. 그래서 오늘도 좌절금지, 우는 건 반칙.

- 옥탑방 고양이 저자 김유리님 -
좋은생각 12월호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