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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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어머니는 열일곱에 나를 가졌다
.올해 나는 열일곱이 되었다.
내가 열여덟이 될지, 열아홉이 될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런 건 우리가 정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건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뿐이다.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란다.
그리고 나는 무럭무럭 늙는다.
내겐 누군가의 한 시간이 하루와 같고
다른 이의 한 달이 일년쯤 된다.
이제 나는 아버지보다 늙어버렸다.
아버지는 자기가 여든살이 됐을 때의 얼굴을 내게서 본다.
나는 내가 서른넷이 됐을 때의 얼굴을 아버지에게서 본다.
오지 않은 미래와 겪지 못한 과거가 마주본다.
그리고 서로에게 묻는다.
열일곱은 부모가 되기에 적당한 나이인가 그렇지 않은가.
서른넷은 자식을 잃기에 적당한 나이인가 그렇지 않은가.
아버지가 묻는다.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나는 큰 소리로 답한다.
아버지, 나는 아버지가 되고 싶어요.
아버지가 묻는다.
더 나은 것이 많은데, 왜 당신이냐고.
나는 수줍어 조그맣게 말한다.
아버지, 나는 아버지로 태어나, 다시 나를 낳은 뒤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싶어요.
아버지가 운다.
이것은 가장 어린 부모와 가장 늙은 자식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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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의 에티카’에서 신형철은 ‘김애란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도대체 가능한가?’라고 반문했다. 그럼 당신에게 묻겠다. 자, 이런 매력적인 프롤로그를 읽고 이 책을 다시 덮을 수 있겠는가?
지난해 여름에 출간되어 아직까지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는 힘을 발휘중인 이 소설은 김애란 작가의 첫 번째 장편소설이다. 그럼 김애란이 누구인가? 2002년 23살의 나이에 대산대학문학상에 당선되어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라는 단 두권의 소설집 만으로 차세대 대표작가로서 기대를 한 몸에 모은, 재기 넘치는 문단의 기대주다.
첫 번째 장편소설임에도 불구하고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이 책은 연애소설을 짐작케 하는 ‘두근두근 내인생’이라는 제목과 달리 프롤로그에 따르면 ‘가장 나이 어린 부모와 가장 늙은 자식의 이야기’이다. 아이의 부모는 열일곱 철없는 나이에 ‘덜컥’ 부모가 되었고, 열일곱의 나이에 여든의 몸을 가지고 있는 아이는 남들의 하루가 1년처럼 지나가는 조로증을 앓고 있다. 마음보다 몸이 더 빨리 자라는 아이. ‘보통의 삶을 살다가, 보통의 나이에 죽는 것’이 기적이라고 믿는 아름이의 삶 자체가 비극처럼 보이지만, 소설은 그리 비극적이지 않다. 이 소설은 슬픈 운명에 맞서는 아이의 이야기인 동시에, 아이를 통해 세상을 경험하면서 성숙해지는 부모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조로증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작가는 담백한 문장으로 벅찬 생의 한순간과 사랑에 대한 반짝이는 통찰을 풀어낸다.
<두근두근한 내 인생>이 결국 우리의 인생으로 다시 되돌아 볼 수 있도록.
사족하나. 작가는 글만 잘 쓰는게 아니라 선곡실력도 남다른게 분명하다.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울거야’ 라니! 검정치마를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소설을 위해 만들어 넣은 노래라고 생각할지도. 이 소설에 ‘Antibreeze' 라는 노래가 들어간 게 검정치마의 행운인지, 이소설의 행운인지 도저히 판단이 안설 정도로 좋다면 너무 과한 표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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