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이 없는 학문을 공부하는 건 정말로 힘들다.
뚜렷하게 정답이 있는 학문이 어디 있겠냐만은 시대에 따라 정답이 바뀌는 디자인이란 학문은 공부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허탈한 마음이 자주 들게 하기도 한다. 2007년 6월 나는 대학생이면 누구나 한번씩 느껴본다는 정체성 혼란의 시기를 겪었다. 3학년1학기를 마쳤지만 영어실력은 부끄러울 정도였고, 무엇보다 수업과 과제로 인한 밤샘의 무한 로테이션이었던 학교 생활이 너무나도 무료했다.
그래서 어디든 떠나기로 결심했고, 비교적 비자 발급이 쉽고, 현지에서 돈도 벌 수 있으며,실패하더라도 유명한 관광지 구경하고 왔다고 둘러댈 수 있는 호주로 갈 마음을 먹었다. 어차피 가게 될 것이면 남들과 조금 다르게 가고 싶었다.같은 일을 해도 남들과 다르게 하고 싶어하는 디자인학생의 마지막 자존심 이라고 할까;..
그저 집에서 대주는 돈으로 외국 나가서 랭귀지나 좀 다니다가 세상구경이라는 합리화 아래 즐기기만 하다 오고 싶진 않았다. 나는 내가 호주에서 현지인들보다 잘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하고 생각해 봤다. 하지만 생각을 하면할 수록 “와.. 진짜 세상 헛 살았네..” 라는 생각만 들뿐 딱히 잘한다고 말할 수 있는 뭔가가 없었다. 그저 할 줄 아는 거라곤 포토샵,일러스터 뿐이었다. 결심했다. 전공을 살려 디자이너로 취업해야지..
난 현지의 구인 사이트들을 마구마구 뒤졌고, 그래픽, 편집, 웹 디자이너를 구한다는 회사란 회사엔 어설픈 영문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모두 보냈다. 대략 30곳은 보낸 것 같다.난감했다. 진짜 단 한군데서도 연락이 오질 않는 것이다. 정체성 혼란에 빠져있던 난 이번 일로 아예 정체성을 잃을뻔했다. 그렇게 여름방학이 찾아왔고, 어떤 곳 에서도 연락은 오지 않았다.
이 때가 내 일생 중 나의 능력에 대해서 가장 깊이 생각해본 시기였던 것 같다. 난 최소한 한 두 군데 정도에선 연락이 올 줄 알았다. 마음을 가다듬고 마지막 학기 때 했던 과제들까지 모두 포함된 포트폴리오를 새로 만들어 앞서 보냈던 30군데에 다시 보냈다. 영문이력서도 인터넷을 뒤져서 좀더 세밀하고 꼼꼼하게 작성하였고, 자기소개서에 1분에 300번을 클릭할 수 있는 나의 빠른 마우스 질 과 100미터를 12.8초에 뛰는 나의 빠른 발 등을 언급하며,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는 한국에 사는 모든 것이 빠른 한국인이라 당신들보다 한 10배는 빠를 것이다.” 라는 식의 국가 이미지를 이용한 어필을 하였다.
난감했다. 또 연락이 안 오는 것이다. 정말 이정도 하면 올 줄 알았다. 세상 참 쉬운 게 아니다. 그렇게 또 몇 주가 지나고 드디어 한군데서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참 세상 일이 웃긴 게 이제 그만 포기하고 딴 거 하려 하면 이런 식으로 포기하지 못하게 떡밥을 마구 뿌린다. 망설였지만 초심을 유지하기로 하고, 난 비자신청과 함께 15일 만에 출국했다.
시드니공항에 비행기가 착륙하는 순간 출발할 때 가졌던 설레임과 환상은 두려움으로 변했다. 난 현지회사에 확실히 취업이 된 것도 아니었고, 그저 면접을 볼 수 있을 뿐 이었다.
그리고 나에겐 4주정도의 생활비 밖에 없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공항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유학생의 도움을 받아 하루 만에 집을 구하고, 시드니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며칠 후, 회사 면접이 있었다.난 당연히 1대1의 면접일거라고 생각했는데, 5명이 한꺼번에 면접을 봤다. (ㅜㅜ)
그들은 모두 현지인은 아니었지만 영어를 굉장히 잘했고, 디자인 업종 경력자들이었으며, 나로 하여금 주눅들게 하기 충분한 상대들이었다. 진짜 자리에 앉아 있는 게 너무 쪽팔릴 정도였고, 괜히 여기서 나라 망신 시키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그래도 “서양에선 밑 보이면 끝이다” 라는 야구선수 박찬호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어설프게 전자사전 찾아가면서 당당하게 내가 할 수 있는 대답들을 모두 했다. 그런데 왠일… 면접관 들이 내 앞에서 마구 웃어대는 것이다. 아…이게 인종차별이구나….” 어차피 합격할 가망도 없는 회사 면접하면서 인종차별도 하네… 에잇” 하면서 한국말로 야이 XX야 했다. 그러자 면접관이 미안하다며 웃은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이유인즉, 내가 하는 영어가 무지 딱딱한 책에나 나오는 문어체 라는 것이다. 그렇다. 난 면접관 들 앞에서 한글로 치면 교과서에나 나오는 “나는….습니다..”이거밖에 안 한거다.
순간 난 미녀들의 수다의 '브로닌'이 되었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면접이 끝났고, 집으로 향했다. 당연히 난 합격을 전혀 기대하지 않았고, 앞으로 살길을 모색 중 이었다.(또 이력서 한 40장 뿌렸다) 그렇지만 여기서 또 나의 기가 막힌 운이 따랐다. 그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내가 합격한 것이다. 이유는 아직까지 모른다. 그저 운이라고 믿을 뿐.
그렇게 나는 Beauty Total Solution /in Sydney 에 3개월 계약직 인턴 디자이너로 취업하였고, 나의 시드니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곳에서 난 화장품 팩키지와 헤어왁스 통, 붙임 머리 디스플레이 이 세가지를 맡았다.
3개월 인턴 기간 동안 해야 할 일이었지만 사실 일의 양이 그리 많지가 않았다.(학교에서 나오는 2주일 과제정도의 양) 이걸 3개월 동안 하라고 하니 호주사람들 특유의 만만디 정신의 느긋함을 느낄 수 있었다.(정말 게으르다)
회사생활은 순탄했다. 같은 부서는 아니었지만 한국인 직원들도 있었고, 호주 특유의 파티문화 때문에 금요일마다 음주가무의 연속이었으며, 한국과는 다르게 월급이 아닌 주급제라서 매주 받는 주급에 너무 뿌듯했다.
그렇게 꽤 많은 돈을 모았고, 회사측에 양해를 구하고 랭귀지스쿨과 회사생활을 병행하였다.
회사 쪽에선 손해겠지만 사실 내영어가 너무 저질이라 일부러 보낸 거라는 말도 들었다.그렇게 랭귀지스쿨에서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회사생활도 하며 3개월이 흘렀고, 난 시드니생활을 마무리 했다.(사실 더 오랫동안 머물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폐렴에 걸리는 바람에 강제출국 조치 되었다. ㅜㅜ)
나의 시드니 생활은 한마디로 어처구니 없이 무모한 도전과 그때마다 기가 막히게 터져주는 운의 연속이었다. 후일담이지만 내가 면접에서 뽑힌 이유는 ‘한국인이라서’ 라는 이유가 컸다. 서양에서 가장 부지런하다는 유태인들을 한 순간에 게으름뱅이로 만들어버리는 한국인들의 엄청난 활동량과 IT선진국이라는 강점이 현지회사에서 한국인이기 때문에 뽑아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영어…모든 사람들이 영어 때문에 이런 도전을 과감히 포기하는듯하다. 하지만 현지회사에서 유창한 영어실력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회사에서 외국인을 뽑는다는 것은 언어적 측면에선 이미 어느 정도 감수를 하면서 현지인이 갖추지 못한 다른 것을 갖춘 사람을 원하는 것이지, 영어만 잘하는 외국인을 채용할 바엔 차라리 현지인을 채용 한다는 게 내가 다닌 회사의 방침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내 영어는 아직도 저질이다.ㅜㅜ)
그렇지만 나는 시드니에 머문 3개월 동안 현지회사 인턴도 경험하였고, 랭귀지스쿨도 수료하였다.
조금만 더 알아보고 무모하게 도전한다면 전혀 다른 유학생활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어차피 인터넷으로 보내는 이력서 떨어지면 그만 아닌가..,ㅋ 이 글이 앞으로 어학연수나 해외 인턴쉽을 계획하고 있는 학우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기를 빈다.
(조영주, 디자인학부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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