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습니다. 지금 Bookers를 읽고 계신 모든 인제대 학우 여러분.
이번에 여러분께 기괴하지만 흥미로운 책을 소개해드릴 의생명화학과 07학번 이명진입니다.
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면 주위사람들, 다시 말해 대세에 영향을 받게 되는데 저를 포함한 여러 학우분들은 유명인사의 성공비법 혹은 자서전, 유명한 작가의 소설 등을 편독하는 경향이 있지 않나 싶어요. 그래서인지 항상 그런 책들은 찾아봐도 제자리에 없고, 예약도 꽉 차있고.... 그래서 이 무더운 여름에 어울릴 만한 조금은 색다른 책을 권해드리고자 부족한 글 솜씨로나마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제가 소개해드릴 책은 미국 르포작가 애니 체니의 저서 '시체를 부위별로 팝니다' 입니다. 제목부터 매우 자극적이고 드라마틱한 이 책은 소설이 아닌 작가가 오랜 기간동안 취재한 실제 사건들을 다룬 보도집인데요(작가의 직업은 기자입니다.). 2005년 기자협회 주최 데드라인 클럽 어워드에서 특종보도부문 최고상을 수상한 이 책은, 시체를 어떤 방법으로 구하고, 처리하고, 판매하고, 쓰는지 등에 대해 경험하고 취재한 시체 시장에 대한 진실을 생동감 있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위압감을 풍기는 무겁고 두꺼운 책들 사이에 있어서였을까, 아니면 평소 'CSI'같은 수사물이나 'House'같은 의학드라마를 좋아해서였을까 여튼 이 책은 제목부터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애니 체니의 투철한 직업의식 덕분에 취재 경험을 바탕으로 쓴 이 책은, 시체를 다루는 사업이 피라미드처럼 짜여 있으며 영역 또한 나날이 치밀해지고 거대해져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자본주의에 찌든 인간은 돈이 된다면 무엇이든 사고판다. 그것이 설사 시체일지라도. 정육점 고기처럼 인간의 몸통이 부위별로 가격표가 매겨진다. 여기에도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적용된다.
시체와 장기를 원하는 곳은 내가 이제껏 생각했던 범위를 훨씬 넘어서고 있었다. 단순히 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들뿐만 아니라 인간의 생명에 관련되어있는 산업 모두가 시체를 필요로 한다. 제약회사, 의료기기회사, 병원, 의과대학 등 이렇게 원하는 곳은 생명과학산업이 발전됨에 따라 늘어만 가는데 정작 시체를 얻을 수 있는 곳은 한정 되어있다. 사망자들 모두가 시신을 기증하지는 않는데다, 기증된 시신이 온전한 상태일 경우가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체의 값은 그것이 어디에 쓰이냐에 따라 1만 달러에서 많게는 10만 달러까지 매겨진다고 한다. 차를 중고시장에 내놓는 것보다 부품을 나누어 팔았을 경우에 수입이 더 높은 것처럼 보통 시체는 온전한 한 구보다 부위별로 나누어 파는 것이 더 이윤이 많이 남는다.
물론 합법적 절차를 거쳐 매매되는 경우도 많지만, 시체 공급을 주 업무로 삼고 있는 몇몇 브로커들은 시체를 얻기 위해 사기나 절도와 같은 위법수단을 쓴다. 예전에 친구들이 '동남아에서 노숙할 경우 다음 날 눈 하나가 없어지거나 신장 하나가 없어진다. 더 웃긴 건 그나마 목숨이라도 건진게 다행이라는 거다.' 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던 적이 있었는데, 이 책을 읽는 내내 이런 이야기가 결코 농담 삼아 할만큼 가벼운 소재가 아니라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치안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나라에서는 이같이 장기와 시체를 팔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 의학과 생명과학을 위한 다는 면목 하에 멀쩡한 생명을 희생시키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만 하더라도 10% 정도의 주에서만 화장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신원을 확인하고 조사한다며 화장을 앞둔 시체일수록 더 쉽게 범죄에 노출된다고 말한다. 불법 시장이 영역을 넓혀가고 기승을 부리는 만큼 개입되는 사람도 늘어나게 되므로 시체가 빼돌려질 수 있는 확률은 날로 커져가고 있다. 도굴업자들은 시체를 무덤에서 훔쳐가고, 원래의 형태대로 만들어놓기 때문에, 열어보지 않는 이상은 전혀 알 수가 없다고 한다. 유명한 인물일수록, 훼손되지 않은 시체일수록 도굴의 확률은 높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이렇게 상품으로서 거래되는 죽은 자들과 그들을 농락하는 산자들의 탐욕에 대한 이야기다. 미국에서 이런 일이 버젓이 자행되고 있었다면 우리나라 시장은 과연 법률 안에서 안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
누군가를 살리고 싶은 간절함은 어떤 무모한 일도 해낼 수 있게 한다. 그것을 교묘하게 이용한 악질들에 의해 사람들의 간절함이 불법 장기거래를 활성화 시키는 꼴이 되어버렸다. 의료행위가 발전해 갈수록 더불어 시체와 장기관련 시장은 더 성장할 것이다. 결코 정당화되어서는 안되겠지만 소중한 사람을 세상에 잡아두고 싶은 사람들의 소망은 시체 암거래를 묵언 할 수 있다.
나는 죽고 난 뒤 의학 발전을 위해서 시체를 기증할 용의가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라도 기증자의 순수한 의도를 저버리고 상술에 휘둘려 시체장사를 하는 브로커들이 있다면 어느 누구라도 자신의 몸을 기증하지 않을 것이다. 시신을 기증한 사람의 의지를 반하는 행위는 죽은 자를 모독하는 것이며 어떤 이유가 있더라도 정당화 되어서는 안된다.
시체 시장의 불법 브로커들은 흔히들 자신들이 하는 행위에 이런 식의 변명을 한다.
"해부는 의료 과학의 앞날을 생각해봤을 때 궁극적으로 선(善)이다. 해부실습을 막으면 귀중한 생명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그에 덧붙여 그들은 해부를 숭고한 것으로 떠받들기까지 했다. "죽어 썩고 부패되어 사라지는 것보다 죽어서도 산 사람에게 쓸모 있게 쓰이는 것을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어차피 죽으면 부패하여 벌레 살찌우는 데밖에 쓰이지 않을 육신 아닌가." 라고.
그럴싸한 말로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 시키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과연 당신들의 원하는 목적이 빛나는 의료 과학의 발전인가 아니면 시체 덕에 배부른 삶을 영위하는 것인가라고. 생소하기는 했지만 나에게 있어선 시체유통에 있어서만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시장의 구조와 의료 시장의 광범위함, 더 나아가 생명 존엄성까지 생각하게 해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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